벌써 2026년, 인생을 돌아보며
세월아 그만 가라..
곧 28살인 지금까지도 컴퓨터 게임이 난 좋다. 키보드와 마우스만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게임을 접한 가장 처음의 기억은 초등학생 때 '메이플스토리' 라는 RPG 게임이었는데, 다른 세계를 직접 탐험하는 것 같은 짜릿한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점점 게임에 중독되고 시간을 쏟다 문득, 내가 게임을 만들면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게임 개발에 관심이 생겼다. 멀티 플레이 게임을 만들고 싶었는데 서버? 소켓? 이게 다 무슨 말인가. 초등학생인 나에게 개발이라는 분야는 불가해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간단해보이는 플래시 게임 개발에 눈이 가더라. 우여곡절 끝에 방향키로 물체를 피하는 간단한 플래시 게임을 만들게 되었다. 앞에 보인 결과물은 간단했지만 뒤에는 한 초등학생의 열정이 있었다. 플래시 365라고 부르는 개인 창작 플래시를 업로드하는 웹사이트가 있었다. 지금은 웹 표준에 의해 어도비 플래시가 브라우저에서 지원 중단되며 폐쇄되었지만, 이 쪽 분야에서는 나름 어깨가 넓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플래시 365에 플래시 게임을 배포하고, 반응이 궁금해 댓글을 모니터링했다. 당연하게도 관심을 받을 수 없는 퀄리티와 재미의 게임이었고, 댓글 수는 한동안 0을 유지하더라. 그런데 한 시간 후 쯤이었나? 댓글이 달렸다. 내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게임 재미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짜릿했다. 짧은 피드백이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내 결과물에 관심을 가지고 반응해주는게 행복했다. 나중에 보니, 그 분은 다른 게시물에도 비슷하게 응원의 댓글을 다는 선인이더라.
각설하고, 이 때부터 게임을 운영하는 것에도 재미가 붙었다. 개발을 직접한 것은 아니지만, '프리 메이플스토리'라는 (불법이지만..) 사설 서버를 운영해보고 싶어 가이드를 보며 MySQL을 연동하고, 간단한 Yaml 설정을 수정하는 등 좀 더 개발에 가까운 경험을 해봤다.
그 중 으뜸의 경험은 마인크래프트 사설 서버 운영이었는데, 많은 다른 사람들이 접속하게 하기 위해 공유기 포트 포워딩을 설정하거나, 아주 간단한 자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작업을 열정으로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금전적인 실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사설 서버에서 몇 달 간 200만원 여의 매출이 나왔다. 물론 들인 시간과 전기료 등을 생각하면, 최저 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양이지만 중학생인 나에게는 굉장히 큰 돈이었고, 남중딩의 기분을 고무시키기엔 충분했다.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며 고민도 없이 컴소공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변명: 고등학생 때도 게임만 하느라 공부는 잘 못했다..ㅎㅎ) 학교에서 학문으로서의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학창 시절 게임을 운영하며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넘어갔던 부분들이 하나 둘 이해되었고, 직접 유니티로 게임 클라이언트도 만들어 보고, 꿈에 그려왔던 멀티플레잉 게임을 이 때 처음으로 만들어 보았다.
근데 직접 해보니, 게임 개발이라는 분야가 개발자 한 명 분의 역량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건축과 같았다. 하나의 건물을 짓는 것에 건축 설계, 익스테리어, 인테리어 디자인, 미장, 수도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듯이, 게임에는 기획자, 디자이너, 작곡가 등 각 분야 전문가의 깊은 관여가 필요했다. 혼자가 좋은 나로서는 이 부분에서 게임 개발이라는 분야에 흥미가 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미래에 관한 고민이 되었던 것 같다.
동기들은 하나 둘 군에 입대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막학기를 시작하며 교수님 추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한 회사는 B2B가 주력으로, 연구소에서 잘 만든 챗봇 솔루션을 금융권 회사들에 라이센스를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졌다.
어쩌다 보니 기술 지원 업무를 맡았고, 업무는 간단한 '웹 개발'과 '고객 요구 사항을 못 들어준다고 연구소를 대신해 고객에 설득'하는 업무가 주가 되었다. 받은 업무에 불만 없이 일하다 보니, 영업을 도와 제안서를 써보고, 고객사에 들어갈 시스템 구성도를 작성하는 등 문서 작업도 함께 하고 있게 되더라. 하다보니 이게 또 재밌었다.
이 때부터 개인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회사 이메일로 AWS 크레딧을 받아 EC2에 쿠버네티스를 직접 구성해보고, 뭔지 잘 몰랐지만 핫하다는 node + react + mongo 스택으로 백엔드 위주의 간단한 웹 서비스도 구성해보았다. 웹 서비스 이다보니 접근성도 짱 좋았다. PC부터 모바일, 심지어 냉장고까지 모든 플랫폼에서 내 서비스가 접근이 된다. 멋지다 이게 내 적성이구나! 싶었다. 회사에서도 이걸 해보고 싶었다. 상사에게 보직 이동을 건의해봤지만 잘 안되더라. (회사 비즈니스 구조 상 무리한 부탁임은 알았다.)
2023년.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다. 이직 목표는 '웹 풀스택 개발자'. 불투명한 나의 목표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찾고 싶었다. 고민의 시간은 짧았고, 배수의 진을 치고자 퇴사를 먼저 이야기했다. 나도 나름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프로젝트를 맡아 봤으니, 음 뭐 나 정도면 유수의 기업에서 관심 가져주지 않을까? 라는 치기 어린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유수의 기업은 내게 관심이 없었고 무수(?)의 기업들 조차 좋게 봐주지 않았다.
불안했다. 이력서를 내고 나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한번도 취준을 경험해보지 않은 나의 치기는 만용이었다. 다행히 원하는 기술 스택과 직무로 3개월 만에 취직은 했다. 유수의 기업은 아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고, 좋은 복지와 납득이 가는 선의 사내 문화를 가진 기업이었다.
나는 입사일인 23년 11월부터, 25년 말인 지금까지 하나의 서비스를 열심히 개발하고 운영하며 달려왔다. 전 직장에서 불만이었던 기술적 아쉬움은, 현 직장의 자유로운 파트 분위기 속에서 해소할 수 있었고 자유로움을 주시는 상사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다른 딱딱한 분위기의 팀이었다면, 내가 이만큼 만족하며 다닐 수 있었을까?
자랑 한스푼 하자면, 회사원 인생에서의 올해는 내게 뜻깊은 한 해였다. 왜냐.. 올해 사내 우수 사원으로 선정되었으니까! 우수 사원이라는 것은 정말 운칠기삼 아니 운구기일의 영역이다. 나보다 열심히 일한 직원도 많았고, 회사 내에 미친 퍼포먼스를 가진 직원도 분명 있었다. 다만 신규 서비스를 런칭한 우리 파트가 시기적으로 유리했음이 우수 사원 선정의 가장 큰 요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우리 파트가 일을 못했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비싼 시계도 받았다. 성과급도, 연봉도 만족할 만큼은 받았다. 하지만 물질, 금전적인 보상보다도 나는 우수 사원이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이 명예로움이 참 좋다. 아무래도 나는 태생적으로 관심 종자인 것 같다. 결론은.. 이거 자랑하려고 글 썼다. 내 앞으로의 미래도 명예롭고 관심 받을 수 있는 삶을 위해서, 운구기일의 일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겠다.